바로크란 서양 예술사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용어이자 예술 사조의 한 유형으로서 원어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다. 르네상스 전성기가 지난 16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 유럽 건축미술의 한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요즘은 장르와 시대로 나누지만 않고 어느 시대의 예술이든지 그 비슷한 특징이 나타나면 이것을 ‘바로크 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크는 단순히 자유분방함과 불균형만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최소한의 질서와 논리가 유지되기 때문에 더욱 바로크적 특성이 발휘되는 장점이 있다. 17세기 유럽의 바로크는 그 이전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인 질서와 균형, 조화와 논리성과 다르게 우연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이 강조된 예술양식이다. 예술 사조에서 후기 바로크 시대는 로코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이기도 하다. 바로크 예술은 생동감, 화려하고 풍성한 장식 등이 주요한 특징이다. 바로크 음악에 대해서 말하자면, 바로크 시대 음악의 기법적인 특징 중 하나는 통주저음이다. 통주저음은 바로크 시대에 형성된 거의 모든 형식의 음악에 사용되었다.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콘체르토, 소나타 등 성악과 기악 분야에서의 새로운 종목이나 형식, 통주저음이나 레치타티보 등의 새로운 기법이나 양식 등 바로크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의 대부분은 유럽 중 먼저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비발디, 코렐리, 토렐리, 헨델, 바흐 등이 있다. 이 시대에는 또 르네상스 시대와는 다르게 성악과 기악의 분리가 행해지고, 성악으로서도 표현의 차이가 중요하게 되었다. 기악 분야에서도 기악의 특성을 살린 표현이 탐구되었다. 1679년까지 현악기 장인 아마티 밑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가 수많은 명기들을 제작하던 때도 이 때이다. 스트라디바리의 라틴어 이름인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1698년에서 1725년까지 만들어졌는데, 1715년경이 그 절정기로 여겨진다. 스승 아마티와 제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주세페 과르네리 등 3인이 제작한 현악기는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갖고 있다. 이렇게 바이올린족의 뛰어난 악기가 많이 제작된다. 기악곡이 중요시되고, 그 중요도로 성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기악이 발전함에 따라 기악곡의 다양한 유형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악보에 악기 편성이 확실하게 명기되었다. 여러 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합주나, 하나의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독주 스타일, 실내악과 관현악이라는 형태도 점차 완성되었다. 훗날 소나타와 협주곡 등의 음악 형식도 이 당시에 만들어진다. 18세기 들어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기악은 독자적인 지위를 확립하며 나중에 고전파로 계승되게 된다. 바로크 시대에 이뤄진 음악적인 발전은 여러 개의 악기 그룹들 간의 대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음악적 대조의 생각들은 합주 유형으로 남게 되었다. 목관악기와 현악기의 대조는 물론, 작은 그룹이나 개별적인 연주자들과 거대한 음악적 그룹의 조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형식은 나중에 협주곡(concerto)으로 발전했는데, 바로크 시대에는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합주 협주곡에서는 작은 그룹들이 큰 그룹에 묻혀서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합주 협주곡들 가운데 가장 잘 유명한 곡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일 것이다. 이 곡의 5번에서는 현악기와 대조하여 플루트와 바이올린, 그리고 건반악기가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 헨델과 코렐리의 합주 협주곡 등을 들 수 있는데, 이후 합주 협주곡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모습이 사라지고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처럼 점차 독주 협주곡으로 변화했다. 바로크 음악이라고 하면 역시 바흐를 빼놓을 수 없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도 독일 바이마르 등에서 오르간 연주자 겸 음악가로 활약했다. 바흐는 영국으로 귀화한 헨델과는 다르게 일평생을 독일에서 지냈다. 음악가로서 교회, 궁정, 자치도시에서 성실하게 일했으며 지금으로 따지자면 공무원과 비슷했을 것이다. 38세 때부터는 번성한 자치도시인 라이프치히로 옮겨서 살았다.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도시 음악감독으로 시내 주요 교회의 예배음악과 시의 공식행사 음악을 만들고 지휘를 맡기도 한다. 당시 라이프치히에는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이라고 불리는 라이프치히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연주단체가 있었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연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콜레기움 무지쿰은 수많은 음악가들의 산실이기도 했다. 콜레기움 무지쿰의 활약이 눈에 띈 것은 독일 바로크 후기의 유명한 작곡가 텔레만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요즘에야 그렇지 않지만 당시 텔레만의 인기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콜레기움 무지쿰은 여름에는 야외의 정원에서, 겨울에는 시내의 커피숍에서 매주 시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다. 베를린에 커피숍 1호점이 생긴 것은 1721년이었고, 그 이후 독일 전체에서 커피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바흐도 커피를 꽤나 좋아했던지 [커피 칸타타]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 당시 커피를 좋아하던 젊은 아가씨들의 모습을 한탄하면서 딸에게 신랑을 짝지워 줄테니 커피를 좀 적당히 마시라는 내용의 가사를 통해 시대상을 볼 수 있어 상당히 재밌다.